Page 4 - 정형외과 소식지 389호-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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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사(追慕辭)
고(故) 백송(佰松) 김익동(金益東) 자문위원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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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형 오호통재(嗚呼通哉)라!
외 늘 온화하고 따뜻한 미소로 후학들을 가르치시던 백송 김익동 자문위원님이 2022년 5월 23일 10시 16분 (향년 92세) 사랑하는 가
과
학 족의 품을 떠나 하느님 곁으로 가셨다.
회 경북의대 정형외과학교실 190여 동문들은 백송 선생님을 다시는 뵙지 못한다는 슬픔에 잠겨 선생님의 생전의 가르침과 발자취를
소
식 다시 한번 되새겨보며 선생님을 추모해 보고자 한다.
백송 선생님은 1930년 5월 경상북도 청송에서 출생하시어 명문 경북중학교(당시 5년제)를 졸업하시고 대구의전(현 경북의대 전신)
을 졸업하시었다. 3학년 때 6.25 동란이 일어나 학도병으로 참전하였으며 군 복무 중 19회로 졸업하셨다.
Ferguson 교수를 울린 애국심
백송 선생님께서는 1954년 종전 후 도미하여 Pennsylvania주 Pittsburgh대학 Albert B. Ferguson Jr. 교수에게서 정형외과 레지던
트 과정을 수료하였다.
전공의 수련 후 Ferguson 교수는 적극적으로 미국 체류를 권하였다. 그러나 백송 선생님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 재건을 위
해 귀국해야 한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자 Ferguson 교수는 눈물을 흘리며 “너의 고귀한 애국심에 감동했다”며 귀국 선물로 “치즐
(chisel)과 말렛(mallet)”을 주면서 고국에 가서 훌륭한 정형외과 의사가 되라고 격려하였다.
수부외과의 태두(泰斗), 나병환자들의 수부재건
백송 선생님은 1959년 귀국 후 대구 동산병원에서 정형외과를 개설하여 진료를 시작하였다. 선생님은 인도에 선교사로 와계시던
Paul W. Brand(영국인) 교수로부터 수부재건 및 나병 환자 수부재건에 대한 사사를 받은 후 깊은 감명을 받고 귀국 후 국내 나병환
자의 수부재건을 위해 정열을 쏟으셨다. 특히 구라선교회를 통한 수술 지원과 여수 “애양원”의 이사장으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시
었다.
백송 선생님의 수부에 대한 학문적인 관심은 후학들에게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후일에 대한수부외과학회의 창설과 발전의 초
석이 되었다.
정중동(靜中動)의 조용한 행정가, 직선 1기 총장으로 피선
백송 선생님은 매우 인자하시고 조용하시나 한 번 결정하시면 조용히 해결하시는 성품이시다. 1980년대 자유의 물결로 매일 학생
데모로 세상이 혼미할 때 의과대학 학장과 보건대학원장 및 의과대학원장을 맡으시어 무난히 학사 행정을 처리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