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정형외과 소식지 384호-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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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풀었고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 이 연회에서 유방을 죽이라고 여러 번 신호를 보냈으나 유방은 위기를 피해 패상으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鴻門之宴:홍문지연) 곧이어 대군을 이끌고 함양에 도달한 항우는 진왕 자영과 황족들을 다 죽이고
               궁성을 불태웠으며 약탈을 자행하고 자신의 근거지인 동쪽으로 돌아왔다. 함양은 關中(관중)이라 불리는 곳의 중심으로 사방이
               산과 물로 막혀있고 땅도 기름지니 도읍을 하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항우에게도 관중을 차지하라고
               권했으나 서초패왕을 자처하고 자신의 고향인 彭城(팽성)으로 돌아가 초회왕을 義帝(의제)로 높힌 다음 그를 살해하고 천하를
               나누어 공있는 장수들을 분봉왕으로 삼았다. 패공 유방은 한왕으로 삼아 험지인 파 촉 한중을 다스리게 하였다. 분봉에
               불만을 가진 많은 제후 왕들이 그 후 계속 항우에 반발하여 소란하였으며 항우는 계속 이들을 진압하려 전쟁이 계속되었다.
               한왕 유방은 촉으로 가며 棧道(잔도:사다리 길)를 통과하고 곧 잔도를 불태워 다른 제후 군대와 도적의 습격에 대비하는 한편
               항우에게 관중으로 돌아갈 뜻이 없음을 나타냈다. 그렇게 항우를 안심시킨 후 곧 다시 군사를 일으켜 관중을 차지하였다.

    32         이에 여러 제후들은 때에 따라 항우 편이 됐다가 유방 편이 되기도 하여 우열을 가리기 힘든 싸움을 계속하게 됐다. 초군과
               한군이 오래 대치하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자 장정들은 군 생활을 힘들어하였고 노약자들은 양식 운반에 지쳤다. 이에 서로
               협정을 맺어 鴻溝(홍구)를 경계로 서쪽은 한이 갖고 동쪽은 초가 갖기로 하고 휴전하였다. 이에 그동안 항우에게 잡혀있었던
    정          유방의 부모와 처자를 돌려보냈고 서로 군대를 철수시켰다. 항우는 팽성으로 돌아갔고 한왕도 역시 서쪽의 장안으로
    형          돌아가려고 하자 장량과 진평이 말했다. ‘한나라가 천하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고 제후들도 모두 우리에게 귀의했습니다.
    외          더욱이 초나라의 군사들은 피로하고 양식은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하늘의 뜻입니다. 이번 기회를
    과
    학          이용하여 천하의 나머지 반인 초나라 땅을 차지하십시오. 오늘 초왕을 놓아주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른바 호랑이를
    회          길러 화를 키우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養虎自遺患:양호자유환)라고 하며 한신과 팽월을 끌어들여 함께 항우를 공격했다.
    소          유방의 공격을 받은 항우의 군대는 垓下(해하)에 방어벽을 구축하였는데 군사는 적고 양식은 다 떨어진 데다 한의 군대와
    식
               제후의 병사들이 몇 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밤이 되자 초군을 둘러쌓고 있는 한의 군대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랫소리가
               들렸다.(四面楚歌:사면초가) 항우는 깜짝 놀라며 ‘한이 이미 초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 초나라 사람으로 한의 군사가 된 사람이
               어찌 이리 많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이는 장량이 한에 항복한 초군들에게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하여 심신이 지친 초나라
               군사들이 전의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항우가 밤중에 일어나 군막에서 술을 마셨다. 항우는 虞(우)라는 미인을 예뻐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고 騶(추)라는 준마를 늘
               타고 다녔다. 이윽고 항우는 북받쳐 오르는 비통한 심정으로 시를 지었다.

               力拔山兮 氣蓋世 (역발산혜 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기백은 세상을 덮을 만한데

               勢不利兮 騶不逝 (세불리혜 추불서)    때가 불리하니 추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騶不逝兮 可奈何 (추불서혜 가내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虞兮虞兮 奈若何 (우혜우혜 내약하)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할거나!

               그날 밤으로 800기병과 포위를 뚫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내가 병사를 일으키고 지금까지 8년이다. 몸소 70여 차례 전투를
               치렀다. 맞선 자는 격파하고 공격한 자는 굴복시키면서 패배를 몰랐기에 마침 천하를 제패하였다. 그러나 지금 갑자기
               이곳에서 곤경에 처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 라고 하며 자결하였다.

               이때 초패왕 항우는 31세였고 그의 옆에 오직 28기의 군사만 남아있었다.
               초패왕 항우가 우희와 이별하는 장면은 중국 京劇(경극)의 인기 있는 소재였고 특히 홍콩배우 장국영이 열연한 영화
               霸王別姬(패왕별희)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義帝(의제)가 항우에게 살해되고 1500년이 지난 조선의 연산군 때 김종직이 쓴 弔義帝文(조의제문)을 그의 제자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한 것이 문제가 되어 戊午士禍(무오사화)가 일어나 수많은 신진 사류들이 희생되었다. ‘의제의 죽음을 조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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