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정형외과 소식지 390호-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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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의 앞길을 막아 5일간 고립된 상태에서 공자의 일행이 굶주린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전에 양호가 그곳 사람들에게
포악하게 굴었던 적이 있는데, 공자와 양호의 모습이 비슷했던 것이다.(논어 子罕:자한 子畏於匡:자외어광)
양호가 노나라에서 축출된 후에야 공자는 노나라로 돌아가 노나라에서 벼슬을 할 수가 있었다.
춘추시대에 주나라가 제후들에 대한 영향력이 적어져 그동안 유지되던 주나라의 질서가 무너지고 제후국 간의 분쟁이
잦아지자 이를 해결하고자 강력한 제후가 출현하여 왕권을 앞세워 제후국들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이를
춘추 5패라고 한다. 그러나 또 세월이 지나 이 제후국의 군주의 힘이 약해지자 그 나라의 강력한 신하들이 권력을 쥐게
되었다. 노나라에서는 魯桓公(노환공)의 세 아들인 맹손 숙손 계손씨 가문이 노나라 군주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였고 이
세 가문을 三桓(삼환)이라고 불렀다. 그중 특히 계손씨 가문이 가장 강력하여 대대로 노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노소공은
삼환 특히 계손씨의 수장 계평자에게 쫓겨나 제나라와 진나라에게 도움을 구했으나 제나라는 권신인 전씨가 제나라 군주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고 진나라는 역시 권신들인 여섯 가문이 권력을 쥐고 있어 노나라의 삼환과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고 또 삼환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은 터라 노소공의 복위를 거절했다. 그래서 노소공은 복위를 하지 못하고 떠돌다 25
외국에서 죽게 되었고 그 뒤를 이은 정공은 더 힘이 없는 군주가 되었다. 그러나 계손씨 가문의 신하인 양호는 계손씨 가문
중에 세력을 넓히고 있었는데 마침 계평자가 죽고 계환자가 뒤를 잇게 되자 계환자를 가두고 앞으로 계환자와 삼가의 적자를
정
다 죽이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서자들을 세우려 계획하였다. 그러나 삼환이 연합하여 양호를 치자 양호는 제나라로
형
그리고 그 후 진나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 특히 진나라의 유력한 신하인 조간자의 호의로 조간자의 신하로 지낼 수 있게 외
되었다. 조간자가 그를 맞이하여 거둬 두려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말했다. ‘양호는 남의 나라 정권을 잘 훔치는 자인데 무슨 과
학
까닭으로 그를 가까이 두려 합니까?’ ‘양호는 그것을 취하려고 힘쓰겠지만 나도 그것을 지키려고 힘쓸 것이오.’ 마침내 조간자가
회
양호보다 한수 위에서 그를 제어했으므로 양호는 감히 그릇된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양호는 조간자를 잘 섬기면서 조간자를
소
강하게 만들어 거의 패주가 되도록 하였다. 진나라는 역시 군주는 힘이 없고 智(지) 魏(위) 趙(조) 韓(한) 荀(순) 范(범)씨 등 여섯 식
가문이 서로 경쟁적으로 힘을 키우고 있었는데 조간자는 양호의 도움으로 경쟁자인 순인과 범길사 두 가문을 축출하였다. 그로
인해 조씨는 더 강해져 진을 나눠 조나라를 세우는 기초를 세울 수 있었다. 즉 사람은 그 사람을 제어하고 운용하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이 유용한 桃李(도리)가 될 수도 있고 해를 끼치는 남가새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 7장 16-20) 사람은 개개인이 자신의 독특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고 열매를 제공하는
나무이기도 하고 아니면 그늘도 없고 오히려 날카로운 가시가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즉 남가새나 가시나무나 엉겅퀴는 아주
이기적인 나무고 자신을 보호하는 이점은 가지고 있으나 남에게 이로움을 주지는 못한다. 가시나무는 그 가시로 잠시 동안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쓸모없는 나무로 판명되어 제거되고 만다.
狄仁傑(적인걸)은 중국의 측천무후가 세운 武周(무주) 시대의 재상으로, 中宗(중종)을 다시 태자로 세우도록 하여
자칫 武(무)씨들에게로 넘어갈 뻔하였던 唐(당)왕조의 부활에 공을 세웠으며 수많은 인재들을 천거하여 당의 중흥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張柬之(장간지)를 추천하여 재상이 되게 하여 당나라가 다시 중흥하는데 큰 공을 세울 수 있게 하였다. 또
그는 일찍이 하관사람 姚元崇(요원숭), 감찰어사인 곡아사람 桓彦範(환언범), 태주자사 敬暉(경휘) 등 수십 명을 천거하였는데
그들이 거의 유명한 신하가 되었다. 어떤 사람이 적인걸에게 말하기를 ‘천하의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모두 공의 문하에
있습니다’. 적인걸이 대답하였다. ‘어진 사람을 천거하는 것은 나라를 위한 것이지 사사로운 것을 위함 아니요.’(자치통감)
태사공이 말했다. ‘옛 책에 이르기를 자신의 몸이 올바르면 명령하지 않더라도 행해지고, 자신의 몸이 올바르지 못하면 비록
명령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논어 자로편 子曰 其身正 不令而行 其身 不正 雖令不從) 이것은 바로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