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 - 정형외과 소식지 393호-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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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사냥하러 갈 때뿐 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궁성 안에서 밤이나 낮이나 여러 부인을 거느리고 술만 마셨다. 그리고
            ‘어떤 자든지 감히 나에게 諫(간)하는 자가 있으면 사형에 처하리라’라는 글을 조문에 걸었다. 그러니 조정이 말이 아니었다.
            진문공이 패업을 이룬 후에 그를 잇는 진나라 제후들이 계속 패업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변국인 陳(진), 鄭(정), 宋(송) 등 작은
            나라들은 모두 맹주였던 晉(진)나라에 복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초나라는 그야말로 고립되어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었다. 또
            권력 있는 신하들이 오랫동안 세력을 잡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어느 날 그런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대부 伍擧(오거)가 장왕을 알현하러 궁으로 들어갔다. 풍악 소리가 들려오는 화려한 궁궐에서 장왕은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술을 마시며 미녀들의 춤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부는 술을 마시러 왔느냐, 음악을 들으러 왔느냐? 아니면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왔느냐?’ 장왕이 오거에게 물었다. 오거는 짐짓 황공한 양을 보이며 허리를 굽혔다. ‘신은 술을 마시기 위해서라든가 음악을
            들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며칠 전에 신은 교외에 갔다 왔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말을 했는데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왕께 그것을 들려드리려고 왔습니다.’ 오거는 목청을 가다듬고 이야기했다. ‘남산에 큰 새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3년 동안 한 나무에 앉아 날지도, 울지도 않고 그대로 있었습니다. 이 새가 무슨 새 인지 알려 주십시오.’                              21
            (不鳴不飛:불명불비) 장왕은 오거가 풍자하는 뜻을 알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 ‘과인은 그 새를 알겠다.
            그것은 비범한 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다니 한 번 날기만 하면 하늘을 치솟듯 높이 날고, 3년 동안 울지 않았다니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대는 그때를 기다려라.’ (一鳴驚人:일명경인) 그 후 수일이 지났으나 장왕은 그 모습 그대로                                정
                                                                                                                   형
            밤낮 향락에 젖어 있었다. 대부 蘇從(소종)이 죽음을 무릅쓰고 초장왕에게 간하였다. 소종의 충심 어린 간청에 드디어 장왕은
                                                                                                                   외
            즉시 악사들과 무희들을 물리고 소종과 무릎을 맞대고 마주 앉아 국사를 논했다. 그제야 소종은 장왕이 그동안 왜 그랬는지를
                                                                                                                   과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간신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서 나라가 어지러웠고, 거기에 빌붙는 자들 또한 많아서 누가 간신이고                                   학
            누가 충신인지 분간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장왕은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함으로써 간신과 충신을 가린 다음에 충신들과 합심하여                                    회
            조정을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다. 이튿날, 장왕은 문무백관을 모아놓고 중대한 인사를 감행했으며,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소
                                                                                                                   식
            이때부터 초나라는 날로 강성해졌다.
            鬪越椒(투월초)는 초장왕 때 초나라 令尹(영윤:초나라 재상)이었다. 투씨는 대대로 초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었으며
            투월초는 특히 초목왕 상신이 아버지 성왕을 죽이고 왕이 되는데 관여하여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투월초는 곰과
            호랑이와 같은 외모에 표범과 승냥이의 목소리를 하고 있어 그의 할아버지이고 초성왕 때 영윤으로 초나라를 강성하게 한
            鬪穀於菟(투곡어도:투누오도)는 이 투월초를 죽이지 않으면 장차 투씨 가문이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인
            鬪子良(투자량)은 듣지 않고 그를 키웠다. 초장왕의 혁신에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투월초는 반란을 일으켰고  자신의 궁술
            실력을 믿고 활쏘기는 자신을 따를 사람이 없다고 자만한 투월초는 양유기와의 활쏘기 맞대결에 양유기의 활에 맞아 죽어
            반란이 진압되었고 투씨 일가는 멸족이 되고 말았다.
            초 장왕은 투월초의 반란을 진압한 후 큰 잔치를 베푸는 데 날이 저물자 촛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연회를 계속하였고 총애하는
            許姬(허희)를 시켜서 잔치에 참여한 신하들에게 일일이 술을 따르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강풍이 불어 촛불이
            일제히 꺼지자 어둠 속에서 누군가 허희의 허리를 껴안았다. 놀란 허희는 재빨리 그자의 갓끈을 잘라서 왕에게 자신에게
            불경한 짓을 한 사람의 갓끈을 잘랐으니 빨리 불을 켜 범인을 잡아달라고 하였다. 이에 왕은 모든 대신들에게 갓끈을 자를 것을
            명하고 그런 다음에 촛불을 켜게 하였다.
            잔치가 끝나고, 허희가 초장왕이 일부러 범인을 잡지 않은 것을 불평하자, ‘자고로 임금과 신하가 한자리에서 술을 마실 때에는
            서로 석 잔 이상을 못 마시며, 낮에만 마시고 밤에는 못 마시는 법이다. 그런데 과인은 오늘 모든 신하와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또 촛불을 밝히면서까지 마셨다. 누구나 취하면 탈선하는 것이 인정이다. 만일 그 사람을 찾아내어 처벌하고 그대의 절개를
            표창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괴롭힌다면 모든 신하의 흥취가 어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오늘 잔치를 차린 의의가 없지
            않겠느냐?’ 허희는 이 말을 듣고 초장왕의 큰 도량에 감복했다.
            삼 년이 지나 진나라와 초나라가 전쟁을 하는데 한 장수가 늘상 앞에 머물며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분투하며 선두에서
            적을 물리치니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초장왕은 괴이하여 물어 말하길 ‘과인은 덕이 박하고 또 그대를 다르게 대우한
            적도 없는데 그대는 무슨 까닭에 이와 같이 죽을 각오로 나아가 싸우는 것인가?’ 대답하여 이르기를 ‘신은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지난날 술에 취해 후궁의 옷을 당기는 실례를 하였는데 왕께서 감추어주시고 참아주시어 저를 죽이지 않으셨습니다.
            신은 죽을 때까지 왕이 감추어 주신 은덕 때문에 감히 왕께 보답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상 간과 뇌를 쏟아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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