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정형외과 소식지 393호-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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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고(肝腦塗地:간뇌도지) 목의 피로서 적을 씻어내기를(頸血湔敵:경혈전적) 오래토록 원했습니다. 신이 바로 그날 밤 후궁에
의해 갓끈이 끊겼던 그 사람입니다.’
장왕이 그날 밤 연회에서 베풀었던 배려심이 장왕과 초나라를 구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바탕이 된 絶纓之宴(절영지연)은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도 담은 말이다.
董卓(동탁)은 후한 말에 靈帝(영제)의 사후 十常侍(십상시)의 난으로 어지러울 때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입성하여 少帝(소제)를
폐위하고 진류왕 유협을 헌제로 옹립한 뒤 세력을 잡았다. 동탁이 황제를 앞세워 정권을 농단하자 제후들은 원소를 맹주로 한
반 동탁 연합군을 결성하여 동탁과 전쟁을 벌였다. 이에 동탁은 낙양을 완전히 불태우고 서쪽 장안으로 천도를 감행하였다.
동탁의 폭정을 막을 계획으로 王允(왕윤)은 동탁의 양아들이자 막강한 장군인 여포와 동탁을 갈라놓을 계획을 세운다.
먼저 왕윤이 여포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달이 부끄러워서 구름 뒤로 숨을(閉月:폐월) 정도로 아름다운 양딸 초선을 보여준
22 다음, 초선을 여포에게 주겠다고 말을 띄워둔다. 다음에는 동탁을 초청하여 동탁에게 초선의 가무를 보여주면서 그의 첩이
되도록 하여 그날로 동탁에게 보낸다. 초선이 동탁에게로 보내졌다는 소식을 듣고 여포가 '초선을 나에게 주기로 했는데 왜
동 태사에게 보내느냐'라고 항의하자 왕윤은 동탁이 며느릿감으로 삼으려고 한다면서 데려갔다고 거짓말을 한다. 여포는
정 동탁이 초선을 자신에게 보내줄 줄 알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데 그러나 동탁은 자기의 침소로 초선을 데려갔고, 여포는
형 시녀에게 그걸 듣고 격분한다. 이 때 여포가 동탁에겐 모른 척 하고서 초선을 흘끗흘끗 쳐다보다가 동탁이 그 사실을 깨닫고
외
과 여포를 내쫓는다.
학 동탁이 궁궐에서 헌제를 만나고 있을 동안 후원의 봉의정으로 달려가서 초선과 만난다. 초선은 눈물을 흘리며 원치 않게
회 동탁에게로 왔다고 호소한다. 뒤늦게 알아차린 동탁이 그곳에 도착, 여포를 발견하고 뒤쫓다 방천화극을 던지기까지 하지만
소 여포는 피하고 도망친다. 자신의 애첩인 초선을 넘보는 여포를 죽이겠다고 하자 동탁의 모사인 李儒(이유)가 초장왕 때의
식
절영 지연의 고사를 이야기한다. 초장왕이 진나라와 싸울 때 적군에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곧 죽게 되었다. 그때 무장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신과도 같이 겹겹이 두른 적병을 뚫고 들어와서 장왕을 엎고 혈로를 열어서 장왕의 목숨을 구원하였다.
장왕은 그의 몸이 몹시 부상한 것을 보고 ‘너는 누군데 그렇게 위험함을 무릎 쓰고 나를 구원하였느냐?’ ‘전년의 楚城(초성)의
夜宴(야연)에서 대왕의 총희에게 갓끈을 빼앗긴 자입니다.’ 하고 웃으며 죽어 갔다는 것이다. 이유는 그렇게 말하며 ‘더 말할 것
없이 그 용사는 장왕의 은혜를 갚은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 아름다운 얘기를 절영지연이라고 전래합니다. 태사께옵서 장왕과
같은 넒은 아량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동탁은 머리를 숙여 듣다가 ‘생각을 고치었다. 여포의 생명은 살려두어라. 내가 다시는
성을 내지 않겠다.’ 그 후 동탁은 초선에게 ‘너는 어째서 여포와 사통하느냐’고 묻자 ‘여포가 와서 저를 겁간하려 하여 연못에
빠져 죽으려 하였으나 여포가 붙잡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태사께서 저를 구원하였습니다.’라고 하였고 동탁은 ‘나는
너를 여포에게 주겠다’고 하자 초선은 울며 ‘저런 사나운 家奴(가노, 종놈)에게 절 주려고 하십니까?’라 하며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하니 동탁은 마음을 고쳐먹고 없었던 얘기로 한다. 이유는 장황하게 이 고사에 얽힌 이야기를 동탁에게
해주면서 차라리 초선을 여포에게 주라고 설득했다. 동탁은 '절영지회'의 의미를 생각하며 분노를 억누르며 초선을 여포에게
주고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결국 그리하지 못하였고 여포는 왕윤 편에 서서 동탁을 죽이는데 일조하게 된다.
최근 여당 대표였던 사람이 당내의 모 인사를 三姓家奴(삼성가노)란 말로 비하한 발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삼성가노란
성이 셋인 종놈이란 말로 여포가 병주자사 정원의 양아들이었는데 동탁의 의견에 반대하는 정원을 여포가 항상 지키고 있어서
어찌할 수 없던 참에 동탁의 모사 이유가 적토마로 회유하여 여포가 정원을 죽이고 오히려 동탁의 양아들이 되었다. 원래
呂(여)씨였던 여포가 정원의 양아들이 되 丁(정)씨가 됐고 다시 동탁의 양자로 들어가 董(동)씨가 됐다는 의미로 여포를 비하한
말이다. 즉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을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정치 모리배라고 빗대서 한 말일 것이다
절영지연의 원인이 되는 행동은 요즘 용어로 성추행이다. 예나 지금이나 성추행은 용납될 수 없고 무거운 벌로 다스려진다.
특히 왕의 애첩을 성추행 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젊음이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순간적인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를 수 있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 힘이 잘 풀리면 사회와 국가의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초장왕은 자신의
총희인 허희를 성추행한 사람을 용서하는 넓은 아량을 보일 정도의 襟度(금도)를 가지고 있어 성공한 정치를 할 수가 있었고
동탁은 알면서도 그러지 못해 실패한 사람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