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 - 정형외과 소식지 389호-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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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산책(東洋古典散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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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예스병원 병원장)









                                                                                                                  27
              割股啖君(할고담군: 허벅지살을 베어 주린 주군을 먹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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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외
                                                                                                                   과
                                                                                                                   학
                                                                                                                   회
            晉獻公(진헌공)의 아들 重耳(중이)는 진나라를 떠나 19년을 유랑하다가 돌아와 진나라 군주가 되었다. 이 사람이 그                                       소
            유명한 晉文公(진문공)이다.                                                                                        식
            그는 진헌공의 여러 아들 중 특히 덕망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었으며 重瞳(중동)과 騈脅(변협)이 있어 크게 귀한 상이라고
            알려져 왔다. 중동은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둘씩 있는 것이고 변협은 갈비뼈가 나누어져 있지 않고 통으로 되어있는 것을
            말한다. 그는 오랜 유랑 생활 중에 많은 고생도 했지만 또 많은 교류와 경험을 쌓아 혼란한 진나라를 안정시키고 제환공에
            이어 霸者(패자)가 될 수 있었다.
            진헌공은 驪戎(여융)을 정벌하고 얻은 여희를 총애한 나머지 세자인 신생을 폐하여 죽게 하고 여희 소생의 어린 奚齊(해제)를
            세자로 세웠다. 또 장차 군위를 두고 문제를 일으킬 염려가 있는 장성한 아들 중이와 이오를 잡아들이라고 했다. 이를 미리 안
            중이는 책나라로 이오는 양나라로 탈출하였다. 그러나 진헌공이 죽자 세자 신생을 죽게 하고 자신의 자식인 해제를 군위에
            오르게 한 여희와 그 일파들에 대한 대신들의 불만으로 곧 내란이 일어나 해제와 여희는 죽임을 당하고 신하들은 덕망이
            있는 중이를 군위에 세우고자 했다. 중이는 아버지인 진헌공이 죽고 그 후를 이은 해제가 살해당하고 또 여러 신하들이 내전
            가운데 죽게 된 혼란 가운데 자신이 군위에 오르는 것이 덕스럽지 않다고 하며 극구 사양하여 여러 대신들은 할 수 없이
            이오를 옹립하여 晉惠公(진혜공)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그리 인망을 받지 못한 진혜공 이오는 또 많은 반대파를 숙청해야

            했고 이웃나라인 秦(진)나라와의 불협과 책나라에 가 있는 중이에 대한 견제 등 국내외의 불안에 편치가 않았다. 그래서
            책나라에 가있는 중이를 암살하기 위해 자객을 보내기로 했다. 자객이 곧 들이닥친다는 갑작스런 전갈에 중이의 일행은 12년간
            살던 책나라에서 짐을 챙길 사이도 없이 급하게 길을 떠났다. 중이는 원래 덕망이 있기로 소문이 나서 진나라를 떠날 때
            많은 인재들이 중이와 함께 망명을 했다. 유력한 원로대신인 狐突(호돌)의 두 아들 狐毛(호모)와 狐偃(호언), 대부 벼슬에
            있는 趙衰(조쇠) 그리고 魏犨(위주) 狐射姑(호사고) 顚頡(전힐) 介子推(개자추) 先軫(선진) 등 진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던
            명사들과 이외에도 말채찍을 하거나 심부름을 하겠다고 따라나선 사람 등 무척 많은 사람들이 같이 떠나 망명을 하게 됐다.
            허둥지둥 급하게 책나라를 떠난 중이 일행은 제환공이 있는 제나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자신을 죽이러 오는 자객을
            피해 급히 떠나다 보니 노자도 없이 행색도 초라했다. 또 중이 일행의 살림을 맡아보던 頭須(두수)가 황금과 비단을 챙겨
            달아나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 제나라로 가는 도중 경유지인 衛(위)나라에 들렀으나 위나라 군주는 중이 일행을 도성에
            들이지도 않고 쫓아냈다. 이제 그들은 가지고 있는 양식도 다 떨어져 굶주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한낮이 지나 그들 일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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