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정형외과 소식지 389호-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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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지도 않고 버려뒀던 것이다. 개자추의 이웃에 사는 解張(해장)은 개자추가 논공행상에서 빠진 것을 보고 또 빠진

            사람은 신고하라고 한 조서를 보고 개자추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개자추는 ‘돌아가신 전 임금 진헌공은 아들 아홉 분을
            두셨습니다. 그들 아홉 사람 중에서 오직 우리 주공께서 가장 어지셨습니다. 진혜공 진회공은 덕이 없어 하늘이 그 자리를
            뺏어 우리 주공께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신하들은 하늘의 뜻을 모르고서 각기 자기의 공인 줄만 알고 서로 벼슬을
            다투고 있습니다.(貪天之功:탐천지공) 나는 그들과 함께 다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일생 동안 짚신을 삼을
            지언정 하늘의 공을 자기의 공인 것처럼 탐하기는 싫습니다.’라고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綿山(면산)에 들어가 시정의 혼잡함을
            피하려고 하였다.

            이에 해장은 조문에
            ‘한 마리의 영특한 용이 얼마동안 거처를 잃고
            여러 마리의 뱀을 이끌고 천하를 헤매어 다녔노라.                                                                           29
            어느 날 용이 굶주림에 쓰러지니,
            그중 한 마리의 뱀이 자기의 허벅지살을 베어 바쳐 굶주림을 면케 하였노라.
                                                                                                                   정
            이윽고 용은 자기의 거처인 깊은 못 속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편히 쉬게 되었노라.
                                                                                                                   형
            그리하여 그를 따라다니던 여러 마리의 뱀은 거처할 구멍을 얻었거늘,                                                                  외
            한 마리 뱀만은 들어가 거처할 구멍을 못 얻어 들판에서 울고 있도다’                                                                 과
                                                                                                                   학
            라는 글을 써 붙였다.
                                                                                                                   회

                                                                                                                   소
            이 글을 읽은 진문공은 개자추가 자신을 원망하는 글인 줄 알고 자신의 무심함을 자책하며 개자추를 찾았다. 그러나 개자추는                                    식
            이미 면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 여러 날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진문공은 내가 듣건대 개자추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라 하니 만일 불을 놓아 숲을 태우면 그는 필시 그 어머니를 업고 숨어 있는 곳에서 나올 것이다 하고 군사를 풀어
            산에 불을 놓았다. 불은 맹렬히 타오르고 사흘 후에야 불이 꺼졌다. 그러나 개자추는 나오지 않았다. 아들과 어머니는 서로
            안고 버드나무 밑에 타죽어 있었다. 진문공은 하염없이 울면서 그들을 면산 아래에 묻고 사당을 세워 해마다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때 산에다 불을 지른 것이 바로 3월 초 닷샛날이며 절기로는 淸明(청명)이었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개자추를
            사모하는 뜻에서 또 그가 불에 타 죽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해마다 3월이 되면 불을 피우지 않고 한 달 동안 찬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청명 하루 전날이 바로 寒食(한식)날이 되었다.

            人身供養(인신공양)의 예로 삼국지의 劉安義俠(유안의협)에는 여포에게 패한 유비 일행이 산속에서 헤매다 민가에 유숙할 때
            집주인 유안은 귀인을 대접할 것이 없자 자신의 아내를 죽여 그 고기를 유비에게 대접한 일을 기술하고 있다.
            또 제환공때 易牙(역아)가 자신의 어린 아들을 잡아 요리하여 제환공에게 바친 예에서 보듯이 중국 사회에서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제환공은 제나라 군주가 된 다음 관중을 기용하여 나랏일을 관중에게 맡기고 자신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냥과
            여색을 즐겼다. 또 관중이 천거하는 여러 유능한 신하들을 기용하고 신임하여 춘추시대의 첫 패자가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竪貂(수초) 易牙(역아) 公子 開方(공자 개방) 등 세 사람을 곁에 두었다. 관중은 이들이 아첨을 일삼고 정치를

            문란하게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제환공의 즐거움을 위해 남겨두었다. 수초는 제환공의 총애를 받는 美童(미동)인데
            제환공을 가까이 모시기 위해 스스로 거세한 후 환관이 되어 궁중에 머물 수가 있었다. 역아는 음식을 요리하는데 솜씨가
            뛰어났다. 제환공이 한 번은 역아에게 ‘일찍이 날짐승과 네 발 달린 짐승과 버러지 종류와 온갖 생선 맛은 여러 번 봤으나
            아직 사람고기 맛은 어떤지 모르겠다’고 무심코 말했다. 며칠이 지난 후 역아는 찐 고기 한 쟁반을 바쳤다. 그 고기는 젖
            먹는 염소새끼 고기보다 연하고 매우 맛이 좋았다. 제환공은 다 먹고 난 후 역아에게 물었다. ‘그 고기가 무엇인데 그렇게
            맛이 있느냐?’ ‘사람고기입니다.’ 제환공이 깜짝 놀라 ‘사람고기라면 어디서 그걸 구했느냐?’ ‘신의 큰 자식은 이제 겨우
            세 살입니다. 신이 듣건 데 임금께 충성하는 사람은 가정을 돌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군주께서 아직 사람고기를 맛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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