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5 - 정형외과 소식지 391호-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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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때 金蓋仁(김개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개를 몹시 사랑한 그는 출타할 때마다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그는
장에 다녀오면서 술에 만취되어 귀갓길에 풀밭에 곯아떨어져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불이나 번지던 불길이 주인 근처로
오자, 다급해진 개는 주인을 깨우려고 온갖 방법을 다 했으나 소용이 없자, 물속에 뛰어 들어가 온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을
적시는 일을 수 백번 반복하여 불길을 겨우 막았다. 그러고 나서 개는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잠에서 깨어난 주인은 모든
상황을 짐작하고 개의 의리에 감탄한 나머지 개를 묻어주고, 무덤에 지팡이를 꽂아 놓았다. 그 후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큰
나무로 자랐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나무를 개 오(獒)자 나무 수(樹)를 써서 獒樹(오수)라고 불렀고 그것이 지금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이 오수설화는 고려 때 崔滋(최자)의 補閑集(보한집)과 조선 때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진다.
동물이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을 구해준다는 이야기는 그리 드문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이야기는 의외로 드물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경우에 背恩忘德(배은망덕)이라고 원망을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옛말에 ‘오로지 어진 사람만이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어질지 못한 25
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모른다’는 말이 생겼다.
어렸을 때 풀이 무성하게 자란 풀밭에서 풀을 묶어 매듭을 만들어 놓고 지켜보고 있으면 친구가 풀밭을 지나가다가 그 묶어 논
풀 매듭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고 좋아하던 생각이 난다. 이것을 結草(결초)라고 하며 그 유래는 오래전 춘추시대 풀을 정
형
묶어 은혜를 갚는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외
과
晉景公(진경공)은 潞(노)나라를 정복하고 장군 魏顆(위과)에게 남아서 정복한 노나라를 안정시킨 후 돌아오라고 학
하였다. 이에 뒤에 남았던 위과는 노나라를 안정시킨 후 군사를 이끌고 진나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노나라의 위급함을 회
전해들은 秦桓公(진환공)은 杜回(두회)를 대장으로 삼아 구원군을 보냈다. 이에 輔(보)씨의 늪 근처에서 진나라 장수 위과와 소
식
두회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
두회는 나면서부터 이가 강철 같았고 튀어나온 눈동자는 이상스레 빛이 났다. 그의 주먹은 구리쇠로 만든 망치같고 빰은
쇠로 만든 바리때 같았으며 수염은 머리털까지 감겨 올랐고 키가 1丈(장)이 넘었다. 그는 능히 千鈞(천균)의 무게를 들고
평소 開山大斧(개산대부: 산을 가를 만큼 큰 도끼) 한 자루를 쓰는데 그 무게가 120근이나 됐다. 한 번은 청미산에서 하루에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아 그 가죽을 벗겨온 일이 있었다. 이에 진환공은 그 용맹을 듣고 두회를 불러다가
처음엔 차우장군으로 삼았다. 그 후 두회는 군사 300명을 거느리고 차아산에 가서 산적 1만여 명을 쳐부수었다. 이때부터
두회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는 이제 秦(진)나라 대장이 되어 晉(진)나라 장수 위과와 서로 싸우게 됐다. 진나라
장수 위과는 陣(진)을 치고 서로 싸울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두회는 진을 치고 말고 할 것이 없었다. 두회는 말도 병거도 타지
않고 다만 평소에 부리던 용기 있는 군사 300명만 거느리고 태산같은 위세로 뚜벅뚜벅 걸어서 바로 진나라 군사의 진 속으로
쳐들어갔다. 두회는 120근이나 되는 개산대부를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콩타작하듯 말다리와 갑옷 입은 진나라 군사들을
후려갈겼다. 그야말로 흉악한 죽음의 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듯했다.
魏犨(위주)는 진나라의 장군이다. 그는 성격이 과격하고 힘이 장사였다. 진문공이 되기 전의 공자 중이가 19년 동안 여러
나라를 유랑할 때 그를 수행한 공신이다. 유랑시절에 공자 중이가 曹(조)나라를 지날 때 共公(공공)을 위시한 조나라 신하들
모두가 그를 푸대접하고 조롱하여 중이를 노하게 했다. 오직 조나라 대부 僖負羈(희부기)만이 중이의 인격과 자질을 알아보고
남몰래 극진히 대접했다. 진나라로 돌아가 군주가 된 문공이 조나라의 문란한 정치 상황을 들어 도탄에 빠진 조나라 백성들을
구한다고 하며 조나라를 침략하였다. 진문공에게 대항한 조나라는 싸움터가 되어 혼전의 중심이 되었고 마침내 조나라
도성은 점령되었다. 온통 약탈과 혼란에 빠진 조나라 도성에서 진문공은 병사들에게 희부기의 집만은 침범하지 말고 보호
하라고 명을 내렸다. 조나라 도성을 함락하는데 죽음을 무릅쓰고 큰 공을 세운 위주와 전힐은 자신들의 전과를 높이기보다
적군의 한 대부를 보호하려는 문공의 명령에 분노하여 희부기의 집을 불태웠다. 이때 불탄 기둥이 무너져 위주가 가슴에
부상을 입었다. 문공은 명령을 어기고 희부기 일가를 살해한 위주를 법에 따라 죽이려 하였지만 그의 재능이 아까웠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상태를 살펴보게 했다. 부상이 심하여 앞으로 장수로써 가치가 없으면 죽이고 심하지 않으면 용서하려는
것이었다. 위주가 이를 눈치채고 부상에도 불구하고 높이뛰기와 멀리뛰기를 여러 차례 해 보였다. 결국 문공은 위주는
용서하고 전힐은 죽였다. 이 위주가 전장에 나갈 때마다 魏顆(위과)와 魏錡(위기)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자기가 죽거든 자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