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정형외과 소식지 391호-9월호
P. 26
사랑하는 첩 祖姬(조희)를 좋은 사람을 골라 시집을 보내 주라고 당부하였다. 그런데 그 후 막상 병이 들어서 죽게 됐을 때는
그 태도가 일변하여 ‘조희는 평소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여자다. 내가 죽거든 조희를 나와 함께 묻어다오. 그녀는 틀림없이
나를 위해 殉死(순사)할 것이다. 그러면 땅속에 묻혀도 외롭지 않으리라’라고 하고 숨을 거뒀다. 그러나 위과는 아버지의
유언을 따르려 하지 않았다. 아우인 위기가 유언을 고집하자 위과는‘아버지께서는 평상시에는 조희를 좋은 곳에 시집보내
주라고 여러 번 당부를 했었다. 나는 이 말씀이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臨終(임종) 때 자기의
무덤에 같이 순장하라고 한 말씀은 정신이 昏迷(혼미)해서 하신 말씀이다. 효자는 정신이 맑을 때의 명령을 따르고 어지러울
때 한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하고, 순사를 면하게 하였으며 장사를 마치자 위과는 아버지의 遺言(유언)을 따르지
않고 庶母(서모)를 개가 시켜 좋은 집으로 시집을 보내 주었다.
秦(진)나라의 杜回(두회)와 여러 번 싸워 번번이 패하여 위태하게 되었을 때 위과는 밤에 비몽사몽간에 귓전에
맴도는 ‘靑草坡(청초파), 청초파, 청초파’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위과는 청초파가 실제로 근처의 푸른 풀이
26 무성한 언덕이란 것을 알고 그리로 진지를 옮겨 싸우게 했다. 적장 두회는 여전히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120근 개산대부를
팔랑개비 돌리듯 휘두르면서 닥치는 대로 진군을 찍었다. 진군을 많은 사상자를 내며 좀처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싸움이
청초파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두회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를 보자 진군은 일제히 함성을
정 올리며 두회를 공격했다. 이때 위과의 눈에 어떤 삼베 도포를 입은 한 노인이 마치 농군처럼 둑 위의 푸른 풀을 한 묶음씩
형 잡고 두회가 움직일 때마다 그 발을 묶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이리하여
외
과 두회의 걸음걸이는 더욱 비틀 거렸다. 무엇이 자꾸 발을 묶었기 때문에 두회는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지는
학 바람에 필경은 사로잡히어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날 밤 꿈에 그 노인이 위과에게 나타나 말했다. ‘나는 조희의 아비 되는
회 사람입니다. 장군이 先親(선친)의 생전의 말씀에 따라 내 딸을 좋은 곳으로 시집보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미약한 힘으로나마
소 잠시 장군을 도와드렸을 뿐입니다.’하고 낮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다시 장군이 그 같은 陰德(음덕)으로 뒤에 자손이 왕이
식
될 것까지 일러 주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대해 ‘孝子 終治命 不從亂命(효자 종치명 부종난명: 효자는 정신이 맑을 때의
명령을 따르고 어지러울 때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나왔다.
殉葬(순장)은 고대에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진 장례풍습이다. 즉 권력자가 죽은 후에 그 권력자의 무덤에 산사람을 같이 묻는
것을 말한다. 秦穆公(진목공)이 죽자(기원전 621년) 당시 秦(진)나라의 풍습에 따라 순장된 사람이 177명에 달하였다. 이
순장에 대해선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까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특히 子車氏(자거씨)의 세 아들 엄식, 중항, 겸호의 순장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세 사람은 매우 어질고 뛰어나 목공이 중용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우러름도 받았다. 그런 세
사람이 순장되자 진나라 백성들은 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나라를 원망하는 黃鳥歌(황조가: 꾀꼬리)라는 노래를 지어
불렀고, 공자는 이를 詩經(시경)에 수록했다.
반면 소동파는 이에 대해 ‘진목공이 살아생전 전쟁에 나가 세 번 패배한 맹명도 죽이지 않고 용서했는데, 어찌 어진 세 사람을
순장시킬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은 누군가의 강요로 순장된 것이 아니라 진 목공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쳤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응소가 한서에 남긴 각주에 있는데, 어느 한 번은 목공이 대신들과
술을 마시다가 ‘살아서 같이 즐거움을 누리고 죽어서 같이 슬퍼하자’고 말하자 엄식 등이 그리하겠다고 약속하였고, 목공
사후에 자거씨 아들 셋이 따랐다고 한다. 순장은 그 후 점차로 폐지되었으나 한동안 후계자가 순장을 가장하여 정적을
제거하는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因果應報(인과응보)의 법칙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한 행동의 결과가 뒤에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지 되돌아오게
된다는 불교색이 뚜렷한 생각이고 사람들은 이를 믿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위안 삼는다. 또 더
나아가서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은 이전에 우리가 제공한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 되고 선을
행하면 보답을 받는다는 단순 원리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 보은의 법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람들은 동물들보다 조금 더 나은 지능으로 인해 너무 복잡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도 사물에 대해
너무 복잡한 생각을 떨치고 이해를 따지기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보다 단순한 생각을 하며 살아야겠다. 그중 하나인 결초보은은
선행을 하면 반드시 그 선행에 대한 보답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 해결방법이 생긴다는 뜻이다.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