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정형외과 소식지 394호-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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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격하는 우상숭배와는 다르다는 이론을 내세워 기독교계를 회유했고 결국 기독교계도 이러한 강압과 회유를 이기지
            못하고 1938년 9월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는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결의하여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교단의 신사참배 결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양심을 지켜 박해를 받은 사람 중 하나가 손양원목사다. 그는 이
            신사참배의 거부로 1940년 검거되어 3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으며 그 징역형은 개전을 하지 않으면 연장되게 되어 계속
            옥고를 치루다가 1945년 해방과 함께 출옥하였다. 그 후 1948년 10월 여수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의 일부 좌경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여수 순천과 전남 동부를 장악하고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으며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또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이때 손양원목사의 두 아들은 공산청년에 의해 기독학생이라는 이유로 학살되었고 그 주동자인 안재선은 여순사건
            진압 후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러나 손양원목사는 원수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따르고저 안재선을 구명하여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다. 1950년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피난을 가자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한센환자들을 놔두고 혼자 피난 갈수 없다고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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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양원에 남아 있다가 1950년 9월 공산군에게 살해되었다.
            교계의 지도층의 여러 사람들은 일제의 압력에 의하였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신사참배를 기독교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으나 시골의 이름없는 교회의 목사인 손양원은 자신의 신앙의 양심상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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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며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국기에 대한 경례가 문제가 되었을 때 그전에 신사참배를                                       형

            국민의례에 해당한다고 하며 허용했던 많은 교계의 지도자들은 이제는 국기에 대한 경례가 우상숭배이므로 거부해야 한다고                                       외
                                                                                                                   과
            주장하였다. 그러나 손양원목사는 국가가 있어야 신앙도 있다라는 전향적인 생각으로 일제시대의 국기에 대한 허리를 숙여
                                                                                                                   학
            경례하는 低頭禮(저두례)를 고처 지금 우리가 하는 손을 가슴에 올리고 국기를 바라보는 注目禮(주목례)로 하기로 하고 국기에                                   회

            대한 경례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여 관철하였다.                                                                              소
                                                                                                                   식
            이런 손양원목사의 행적을 알고 있는 김구선생은 손목사의 바른 행적이 뒷사람의 사표가 된다고 생각하여 이 시를 글로 적어
            주었다.

            요즘 흔히 내로남불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에서 서로를 비난할 때 흔히 사용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예전부터 남의 실수를 거울삼아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남의 실수는 비난하면서 내가 같은
            실수를 할 때면 오히려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한다면 옛사람들의 진심 어린 교훈이 소용없는 것이 된다. 이제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잠시 시간을 내어 지난해의 잘못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눈길에 남긴 내 발자국을 뒷사람이 보고 나를 평할 때

            바르게 걸었는지 아니면 어지러이 걸었는지 판단의 척도가 된다는 것을 알고 처신에 더욱 조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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