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정형외과 소식지 386호-4월호
P. 22
말도 하지 않고 가 버렸다. 환공이 사람을 보내어 그 이유를 묻자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을 먹고 고약을 바르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혈맥에 있을 때는 金鍼(금침)과 石鍼(석침)으로 치료할 수 있습니다. 병이 위와 장 사이에 있을 때는
청주와 탁주로 달이는 약을 써서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에 있으면 사람의 생명을 맡은 신의 사명일지라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공의 병은 골수에 와 있으니 저는 치료하시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 버린
것입니다.’ 그 뒤 5일이 지나자 환공은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환공은 그때서야 사람을 시켜 편작을 불렀으나 편작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환공은 마침내 죽고 말았다. 이에 편작의 명성은 천하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한단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는
부인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을 듣고 부인병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낙양에 갔을 때에는 주나라 사람들이 노인을
공경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귓병 눈병 허리가 저리는 병 등 노인병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었다. 함양에 들어와서는 진나라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곧 소아과 의사가 되었다. 이처럼 그는 그 지방의 풍속에 따라 자유로이 몸가짐을
22 변화시켰다. 진나라 侍醫長(시의장)인 太醫令(태의령) 李醯(이혜)는 자기의 의술이 편작만 못하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시켜
그를 찔러 죽였다.
편작의 삼형제는 모두 의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하루는 魏文侯(위문후)가 막내인 편작을 불러 누구의 의술이 가장 뛰어난지
정
형 물었다. 편작은 큰 형님의 의술이 가장 뛰어나고, 그다음이 둘째 형이라고 하였다. 자신의 의술이 제일 형편없다고
외 대답하였다. 깜짝 놀란 위문후가 묻기를 ‘그럼 어찌하여 편작선생 의술의 명성이 천하에 제일 높은가?’ ‘그건 큰 형님이
과 사람들의 병을 미리 방지하기 때문입니다. 큰 형님은 병의 증세가 나타나기도 전에 사람의 질병을 치료합니다. 가벼운 질병도
학
회 초기에 뽑아버리니 큰 형님의 명성이 외부로 전해지지 못합니다. 둘째 형님은 증상 초기에 약만으로 치료해 줍니다. 이 때문에
소 사람들은 둘째 형님이 작은 병만 치료한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 병이 발전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식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런 이유로 작은 형님의 명성은 마을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형님들에 비하면 저의 의술은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저는 환자의 생명이 위독할 때에만 치료를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맥에다 침을 놓고 수술을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어야 의술이 대단한 것으로 여깁니다. 간혹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려낸 탓에 자신의 명성이 천하제일인 것처럼
알려졌습니다. ‘위문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편작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작 눈앞에 보이는 중병만 치료하는 사람이 어찌 천하의
명의라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저의 형님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을 치료하는 고수가 많습니다. 그들은 생색을
내지 않기에 눈에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부디 인재를 뽑을 때 명성에만 집착 마시기 바랍니다.‘ 위문후는 편작의 식견에
감탄했다. 세속의 평가는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진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널리 알려진 사람은 겉이 화려한 사람일 수
있다. 진짜 고수는 늘 겸손하기에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華佗(화타)는 자가 元化(원화)이고 후한 말 沛國 譙縣(패국 초현)사람이다. 지금의 安徽省(안휘성) 亳州(박주: 보저우)로
지금도 이곳에 큰 약재시장이 있다. 병을 진단하고 환자의 상태를 예견하는 능력도 뛰어나, 환자의 얼굴색을 보거나 맥을
짚는 것만으로도 병의 정도와 예후를 예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타는 체질에 따라 처방도 다르게 내렸다. 府(부)의
관리인 兒尋(아심)과 李延(이연)이 똑같은 증상으로 함께 진찰을 받았으나, 화타는 아심에게는 설사를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고, 이연에게는 땀을 흘려야 한다는 처방을 내렸다. 이들이 같은 병에 왜 치료방법이 다른지를 묻자 화타는 두 사람의
체질이 다르므로 당연히 다르게 치료해야 한다며 다른 약을 주었다. 그리고 화타의 말대로 두 사람 모두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기록들에 따르면, 화타는 약과 침, 뜸 등에 모두 정통했고, 침과 약만으로 치료할 수 없을 경우에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환부를
절개했는데, 창자에 질병이 있는 경우에도 창자를 잘라 씻어내고 봉합해 고약을 붙이면 4〜5일 만에 고통이 없어지고, 한
달이면 완쾌되었다고 한다. 수술을 하기 위하여 麻沸散(마비산)이라는 마취제도 만들었다.
이렇듯 화타가 명의로 이름을 떨치자 같은 고향 출신인 曹操(조조)는 그를 불러 곁에 두고 자신이 앓고 있는 두통을 치료하게

